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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내셔널 몰 National Mall 돌아다니기 (下)

USA

by 그리부이 2024. 2. 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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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베테랑 메모리얼의 반대편에는 한국전쟁 메모리얼이 존재한다. 한국전쟁은 베트남전처럼 패배한 전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승리’한 전쟁은 아니었기 때문에 역시 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라는, 참전용사 기념비로 남아있다. 
 



한국전쟁 당시 약 180만명의 미군이 투입되었으며 실종자 포함 약 4만여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부상자도 10만명 이상 발생한만큼 매우 커다란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은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승전도 패전도 아닌 어정쩡한 휴전으로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참전하여 명확히 승리한 2차세계대전같은 경우에는 미국의 대의명분과 위대한 전쟁영웅 등 자랑스러운 면모가 부각되고 기억되며, 위에서 말한 베트남전같은 경우에는 과거에 대한 성찰 부분이 강조되어 계속 기억되는 반면에, 한국전쟁은 딱히 미화할만한 부분도 비판받아야할만한 부분도 없다. 다루기가 애매하다는 뜻이다. 당시 미국의 대외전략 상 명분은 충분했으나 그렇다고 또 확전은 원치 않았던 참전국 간의 내부 사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전쟁은 굉장히 빨리 끝난 전쟁에 속한다.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해서 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을 맺었으니 약 3년 정도. 베트남전이 약 8년, 아프간전이 약 20년, 이라크전이 약 8년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쏟아부은 물량에 비해 단기간에 종료되어 기억에서 잊혀진 셈. 심지어 이 메모리얼조차 전쟁이 한참지난 92년에 착공하여 95년에야 완공되었다.


그래서 이곳에 설치되어있는 메모리얼의 이름은 Wall of Remembrance다. 기념비에 적혀있는 수많은 참전용사의 이름을, 뺴곡하게 적힌 이름을 보다보면 메모리얼 입구에 있는 Cost of Freedom이라는 글이 절로 떠오른다.

아무래도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이 전쟁의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메모리얼 자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DC에 올 일이 있다면 한 번쯤은 방문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전쟁 메모리얼을 지나 조금 더 걷다보면 마틴루터킹 주니어 메모리얼이 나온다. 흑인 인권운동가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마틴루터킹은 우리의 느낌과는 달리 꽤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일단 그를 기리는 날이 연방 공휴일로 지정되어있을 정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취임해서야 마틴루터킹에 대한 메모리얼이 건립되었다는 점도, 아직까지 미국 사회 내 은연중에 남아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마틴루터킹 메모리얼은 다른 메모리얼들에 비해 살짝 외곽에 있다. 게다가 타이달 베이슨을 바라보고 있어, 굉장히 평온한 느낌을 준다. 여기저기에 적혀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어록들을 쭉 읽다보면 더욱 더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기념비 뒤를 보면 뒤 쪽의 거대한 바위가 산과 같은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절망의 산’이다. 절망과 같은 미국 내 흑인 커뮤니티 가운데, 마틴 루터 킹이 희망의 돌로 표현되어 있다. 석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있으면 절망의 산과 희망의 돌이 겹쳐져 하나로 보이도록, 그래서 절망의 산에서 빠져나와 빛(태양)을 향해 바라보고 서있는 마틴 루터 킹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걸어온 삶과 비폭력 평화시위의 힘을 아주 잘 표현하는 메모리얼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사실 오랜 시간동안, 힘이라는 것은 무력에서 비롯된다고 믿어 왔다. 폭압적인 기득세력 아래 절망적인 상황에서, 폭력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도 생각했다. 천안문으로 진입하는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내던 남자를 생각해보자. 물론 매우 대담하고 용감하며 그의 신념에 대한 굳건한 의지는 존경할 만 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무엇을 바꿀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세계사를 연구한 사람들의 결과는 달랐다. 테러 집단에 의한 저항운동의 성공률은 극히 낮으며, 비폭력 저항운동의 성공률이 폭력적인 경우보다 두 배는 높았다고 한다. 또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평균 참여자 수는 폭력적인 경우에 비해 4배나 많았다고 한다. 또 이러저러한 많은 데이터와 연구결과들이 있지만, 여하튼 모든 결론은 비폭력의 힘을 증명하고 뒷받침해준다.

마틴 루터 킹 메모리얼에서는 이러한 비폭력 저항운동의 힘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유사한 연구중에는 이러한 것도 있다. 탄압이 더욱 가혹한 경우 반발 시위의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최루탄이 아니라 실탄을 발포하는 병력을 대상으로, 촛불만 들고 나갈 수는 없는게 당연한 노릇이니까... 그래서 어찌보면 당시의 미국이 비폭력 운동이 가능했던 사회였다는 뜻도 된다. 우리는 한 10년전에야 가능했던 것이, 60년대에 이미 그정도의 성숙한 사회를 이루었다는 미국이 참 대단하기도 하면서.... 당장 몇 년전에 의회의사당을 무력점거하는 꼴통같은 면모도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참... 신기할 따름.



계속해서 타이달 베이슨을 따라 걷다보면 FDR 메모리얼이 나온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한 대통령이고 (덕분에 3회 이상 임기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도록 헌법을 수정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고...) 뉴딜 정책 등을 통해 미국을 경제 대공황으로부터 구해내며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승전으로 이끌고 미국의 초강대국화를 이루었던 시기의 대통령이다. 그의 긴 집권시기 만큼이나 길게 형성된 메모리얼이 참 재밌었다.



타이달 베이슨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일본 양식의 파고다가 있다. 수교를 기념하며 심은 벚꽃나무도 많다던데, 그래서 이쪽 타이달 베이슨에서도 벚꽃 시즌에 구경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겨울이라 꽃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멀리 보이는 조지워싱턴 기념탑과 푸른 하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계속해서 더 걷다보면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이 나온다. 여기도 밖에는 약간 공사중이라 많이 어수선한 느낌이기는 했다. 그의 최대 업적은 아마도 루이지애나를 매입하여 미국의 영토를 두 배로 (당시기준) 늘린 일. 미국 중부의 식량생산 능력과 사기적인 수준의 자연적 수로인 미시시피 강은 미국의 경제 체재 발전에 가장 핵심적인 자산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메모리얼 자체는, 어떻게 보면 가장 전통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 그리스 신전과도 비슷한 높고 웅장한 기둥에, 돔 양식에, 스케일을 잔뜩 키워놓은 전신상까지. 메모리얼 자체의 감흥은 아무래도 낮았달까나... 그래도 날씨가 워낙 좋고 건물 자체가 예뻐서, 짝꿍은 여기 오니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여기까지 돌아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배가 고파서 나머지는 점심먹고 둘러보기로 했다. 맑은 하늘에 순찰 헬기가 계속 돌아다녀 어느 곳보다도 관리되는 느낌을 받았던 최고의 공원 내셔널 몰. DC에 와서 이곳을 오지 않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구석구석 둘러보면 조금 더 재밌다는 걸,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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