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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구경하기

홍콩-마카오

by 그리부이 2023. 9.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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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홍콩을 ‘홍콩’답게 만드는걸까? 영국과 중국이 뒤섞인 것 같은 묘한 분위기도,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삶의 모습도 모두 맞는 답이겠지만, 무엇보다도 홍콩을 홍콩으로 만드는 데에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홍콩에만 있는 독특한 건축물 구축물이 아닐까 싶다.

오늘 방문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도 홍콩만의 독특한 건축물이다. 이러한 건축물이 지어지게 된 이유를 살펴보자면, 이야기는 아편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의 아편 수입 금지안으로 일어난 아편전쟁은 다들 잘 아시다시피 아주 싱겁게도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난징 조약을 통해 홍콩 섬 지역이 영국으로 양도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홍콩 최초의 근대화 도시가 당시 영국 여왕의 이름을 붙인 ‘빅토리아 시티’. 현재의 셩완(상완), 센트럴(중완), 완차이/코즈웨이베이(하완) 지역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센트럴이 가장 중간의 메인 지역이었고 이쪽에 영국 총독부와 주요 시설이 건설되었으며, 이것이 센트럴 지역이 현재까지 홍콩의 심장부로 존재하는 이유다.

구룡반도와 신계 지역이 조차된 이후에도 센트럴은 계속해서 홍콩의 핵심 지역으로 유지되었는데, 이러다보니 홍콩의 부유층들은 센트럴과 근접한 곳에 거주지를 잡으려 했을 것이다. 구룡반도와 홍콩 섬을 잇는 터널이 개발된것은 1970년대 이야기니, 바다 건너에 거주하다가 넘어오겠다는 것은 아직 한참 남은 이야기고.



이 포인트에서 미드레벨이 등장한다. 홍콩섬은 생각보다 가파른 지형의 섬이다. 해안가에 그나마 있는 평지는 빅토리아 시티가 되었고, 섬 중심부의 높은 산지는 빅토리아 피크가 되었다. 그 사이의 애매~한 높이의 언덕 지형. 그곳이 바로 미드레벨이다. 위에서 말한 이유로 미드레벨에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 주거지와 상업지인 센트럴을 이어주는 도로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아시다시피 과거의 도로는 등고선을 따라 만들어졌다. 실제로 미드레벨의 도로 또한 높이가 같은 가로로 길게 이어져 있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굽이굽이 둘러서 올라가야한다. 실제로 차도도 그렇게 나있고.

근데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이걸 관통해서 뚫어버리고, 800미터에 달하는 구간의 에스컬레이터 / 무빙워크가 동력으로 운영되어, 사실상 서로 다른 레벨에 위치한 개별 도로들을 횡으로 묶어주며 마치 수평면에 있는 듯한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물론 미드레벨 지역이 이미 부유층의 거주지였던 탓에 이러한 프로젝트가 실행될 수 있었겠지만,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덕분에 달동네가 되기 십상인 언덕 지역이 현재의 할리우드 스트리트를 포함한 소호, 노호, 포호, 란콰이퐁, 더들 스트리트까지 이어지는 넓은 상업구역이 발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잡설이 길었는데,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아침 출근시간에는 언덕에서 센트럴쪽으로 내려오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10시반이 지나면 방향을 바꾸어 언덕을 올라가는 방향으로 운영된다. 에스컬레이터 위쪽에 방향 표시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선배와 함께 에스컬레이터 끝까지 올라갔다. 맨 위에는 역시 가격이 꽤 되어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위치하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서 이동시간은 꽤 되겠지만,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으니 이런 단지를 지을 수 있었겠지.






올라와서 주변을 좀 둘러볼만한 것이 있나 싶었는데, 너무 꼭대기로 올라오니까 진짜 주거지밖에 없더라. 그래서 적당히 내려가서 까페나 가기로 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스컬레이터는 한방향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꼼짝없이 걸어내려가야한다.


이 길을 걸어내려가다보니 정말 유명한 가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 사랑했다는 에그타르트 맛집, 실크스타킹으로 차를 내려주는 차찬탱 란퐁유엔, 배우 양조위의 맛집이라는 카우키 등... 근데 정작 줄이 너무 길어서 먹어볼 엄두는 안나더라.



그렇게 동네를 다 둘러보고 내려오니 시간이 꽤나 지나있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홍콩영화의 배경으로도 많이 나와서, 처음 보는 순간부터 엄청 반가웠다. 굳이 이걸 보러가야 하나? 이게 무슨 관광 명소야? 라고 하는 사람도 많던데, 공간이 갖는 의미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나에게는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소개글을 이렇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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