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시간이 되어가니 시차에 적응하기 시작한 우리. 오늘 아침 식사는 클럽라운지에서 먹어보기로 했다. 짝꿍은 괜찮았지만 아침을 많이 먹는 나로서는 어제 양이 조금 부족했기도 했고 미국 내 호텔의 라운지가 궁금하기도 해서 방문해봤다. 뭐 그냥저냥 무난하긴한데 딱히 인상적이지는 않은 조식... 그리고 생각보다 커피가 맛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커피 소비국이라 기본은 할 줄 알았는데, 커피 맛 자체만 놓고 본다면 국내 호텔들이 훨씬 나은듯...
오늘은 건축학과를 나왔던 짝꿍이 짜준 코스로 움직이기로 했다. LA는 서부 최대의 도시답게 멋진 건축물들이 많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건축물들을 보러다니기로 한 것.
맨 처음 보러간 건물은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이었다. 이 건물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 상 수상 이력도 있는 프랭크 게리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는데, 해체주의 건축으로 유명한 건축가라고 한다.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느끼기에는, 아니 이걸 어떻게 지었나...싶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중 배분도 정말 신기하긴 하지만, 애초에 이걸 어떻게 쌓아올렸을까...싶은 그런 건물...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은 그런 건축물 중에서도 조금 더 독특한데, 외장재가 전부 스테인레스 스틸 패널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태양이 반사되어서 눈이 부실 수 있다는 이유로 인허가를 득하기 쉽지 않았고 결국 표면을 모두 샌딩해서 난반사되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래도 눈이 부시긴 했다.... 일년내내 쨍쨍한 캘리에서 이런 건물이라니... 뭐 내부는 시원할 수도 있겠다 싶긴 했다.
그 다음에는 폴스미스 건물로 향했다. 뭐 특별한 건축물은 아닌데, 외벽을 아주 매트한 핑크로 깔끔하게 칠해놔서 굉장히 인스타그래머블하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많은 여행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더라. 우리도 줄서서 사진을 찍었고, 전세계 여행객들이 서로서로 양보해주고 서로서로 찍어주는 훈훈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고나서는 근처의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짝꿍이 데려간 어떤 주방 소품 샵을 갔는데, 예쁜 아이템들이 정말 많아서 하마터면 잔뜩 사버릴뻔 했다. 확실히 미국이 쇼핑 / 소비의 나라가 맞는게, 한국에서는 굉장히 비싼 냄비(르크루제나 스타웁같은)들도 저렴하게 살 수 있었는데, 눈돌아가서 샀다가는 무게때문에 고생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통주물냄비는 돈 많이 벌면 한국가서 사야지...
어느덧 식사시간이 되어 파머스 마켓 쪽으로 향했다. 파머스 마켓에는 팜파스그릴이라고 하는 유명한 슈하스코 가게가 있었는데,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팜파스 그릴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미 스타일의 (특히 브라질) 슈하스코 가게다. 다양한 종류의 슈하스코를 팔고 있고, 마치 푸드코트처럼 접시를 들고 움직이면서 원하는 고기를 주문하면 썰어 담아준다. 마지막에 담은 고기 / 음식 만큼 결제를 하면 끝. 다양한 슈하스코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 물가 비싼 LA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스테이크를 먹어볼 수 있다는 것이 두번째 장점이겠다.
둘이 같이 한 접시씩 시켜놓고 먹고있는데, 살짝 질기기는 했지만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게 먹고 나왔다. 내 기억에는 파운드 당 12달러였는데, 1 파운드가 454g이니까 대충 계산해도 100g 당 3천원 조금 넘는 가격? 한국에서는 코스트코에서 파는 생고기나 이정도 가격일 것이다. 이번 미국 서부 여행에서 가장 저렴하고도 맛있게 먹은 가게를 고르자면 여기 팜파스그릴과 인앤아웃...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게티센터로 향했다. 게티센터는 미국의 석유 재벌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잔 폴 게티 (Jean Paul Getty)’가 그의 소장품과 기부금을 통해 조성한 뮤지엄으로, 브랜트우드 위쪽 산타모니카 산맥 언덕 꼭대기에 약 3만평의 부지를 자랑하는 캠퍼스이자 박물관이다. 역시나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던 백색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모든 건물을 설계했고, 무엇보다 무료로 이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건축물들을 보면서 느낀 것인데, 왜 리처드 마이어가 백색의 건축가로 불리는지,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 건축물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수준 높은 건물이었다. 같은 백색이라 할지라도 시간과 구름의 양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백색이 존재하고, 또 질감과 패턴을 다양하게 사용함으로써 계속해서 새로운 백색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 LA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에 절대 빼놓지 말아야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놀이동산 다음으로 가장 긴 시간을 보냈다. 건축에 큰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장면 장면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재밌었고, 시간에 따라서 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너무너무 재밌었다. 어떠한 분야든, 경지에 오르면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건물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다양한 소장품보다도 오히려 그 소장품을 품고있는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었던 게티센터.
정신없이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어둑어둑해질 시간이 되었고 우리의 마지막 일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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