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싱가포르 볼만한 곳 시티 갤러리 Singapore City Gallery 후기

그리부이 2024. 12. 25. 09:00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다. 도시국가의 특성 상, 토지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일 수 밖에 없다. 제한된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도시를 계획하고 개발하는 정책들의 중요도가, 보통의 나라들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싱가포르에서 도시의 중장기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토지 개발사업을 관리하는 기관은 도시재개발청(Urban Redevelopment Authority), 속칭 URA라고 부르는 곳이다.

오늘 소개할 시티 갤러리 Singapore City Gallary는 이 URA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으로, 싱가포르의 도시 변화 모습과 미래 계획을 보여주는 곳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방문한 모든 장소 중에 최고였다.


지도를 따라 건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시작한다. 상설 전시는 무료.


대략적인 맵. 1층은 특별전으로 운영하고, 2층과 3층이 상설전시장이다.


전시 구성이 아주 좋았다. 현대 사회에서 도시란 어떠한 의미인지, 싱가포르가 가지는 지역적 특성은 어떠한지, 미래 싱가포르의 모습과 도시의 비전은 어떤지,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분명 싱가포르는 성공한 도시다. 이 도시 계획의 성공은 (비록 독재체제에서 기인하였지만)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과 강력한 실행력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전시의 초반부는 이러한 일관성 있는 정책의 기반이 되는  싱가포르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었다.

매 선거만 지나면 산업 정책 방향은 물론이고 외교 노선까지 바꿔버리는, 그래서 더 중요한 국인은 뒷전이고 인기에만 영합하느라 정신이 없는 동방의 어떤 나라가 떠올랐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싱가포르 도시 정책에서 가장 강조되어온 것은 경제 성장과 친환경이다. 싱가포르 독립을 이끈 초대 총리 리콴유 시절부터 열악한 도시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쳤으며, 가장 훌륭한 인재들이 도시계획과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무려 1968년에 발표한 ‘Clean & Green’ 정책은 싱가포르 도시 정책을 관통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컨셉 플랜인 ‘City in a Garden'으로 이어지고 있다.


URA는 매 10년마다 앞으로의 50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다. 그것이 위에 나와있는 Long Term Plan. 중장기 계획에서는 싱가포르의 인구 구조가 어떻게 될 것인지, 어느 정도 수준의 주거 면적을 더 확보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수준의 항공/선박을 처리하게 될 것인지, 인프라를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수준의 토지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지, 이를 위해 어느 정도 수준의 매립지를 확보해야 하는지 등을 제시한다.

그다음은 마스터 플랜으로 확대된다. 마스터플랜은 중장기 비전과 컨셉에 따라 도시개발이 진행되도록 토지 용도와 밀도 등을 구체화시키고 이를 어느 시점에 실행할 것인지 결정한다.

무엇보다 싱가포르가 부러웠던 부분은, 이러한 논의의 내용이 누구나 접근가능하도록 투명하게 공개된다는 것. URA의 홈페이지에 가면 당장 지금도 URA가 계획하는 모든 플랜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은 싱가포르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민간 투자를 활발하게 만든다.


싱가포르는 좁은 국토를 확장하기 위해 간척사업을 활발하게 해왔지만, 늘어나는 수요와 인프라 구축을 획기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지하 공간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도로, 주차, 물류, 수도, 전기, 하수, 쓰레기 수거 등 대부분의 유틸리티 시설을 지하로 보내고 지상은 시민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놔두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URA는 전력, 수도 등 타 기관이 관리하는 지하 시설물의 데이터를 통합하여 지하 공간과 인프라의 완벽한 3D 모델링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목표이고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이미 마리나 베이 지역에 대한 3D 지도가 완성되었으며 이것 또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간중간 너무 심취해서 보다가 찍지 못한 것이 많은데, 어린이들을 위해서 직접 도시의 여러 기능을 체험해볼 수 있는 게임도 있었고, 상충되는 다양한 집단의 요구에서 균형있는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게임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은 싱가포르가 생각하는 도시에 대한 비전,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기준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Common Sense’를 공유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요즘에야 디지털로 모델링을 하지만 예전에는 이렇게 직접 손으로 모델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에도 모델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도시 전체의 컨텍스트와 맞대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확실히 화면으로 볼 때와 실제 모델을 봤을 떄의 느낌이 다를 수 있긴 하지.



이쯤에 와서는 정말 감탄을 넘어서 약간 눈물이 날 뻔 했다. 나는 싱가폴 사람도 아닌데 싱뽕이 차는 느낌...

(싱가포르에도 정말 많은 사회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가다듬고,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고, 시민과의 협의 역시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진행되고, 또 이러한 내용을 모든 세대가 공유할 수 있도록 오프라인 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이 싱가포르의 진정한 강점일지도 모르겠다.

큰 고민없이 공수표를 남발하고, 쉽게 폐기되는 정책이 수두룩한 이 시대에, 비전을 오랜 기간 유지하고 공유하며 끊임없이 정교화해온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우리도 협력과 합의를 바탕으로 공통된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그러한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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